리뷰 이야기/토크멘터리 전쟁史

15. 글로 보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 4부. 걸프전쟁 [2] 검은황금의 전쟁

남보르 2018. 11. 23.


"전쟁을 알지 못하면 역사를 알 수 없다.

이야기로 만나는 토크멘터리 전쟁史"


석유에 의한 석유를 위한 전쟁

오늘도 차를 타고 20원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 4km를 더 운전한 그대... 이렇게 석유는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는 이 시대의 가장 강력한 자원 중 하나이다. 


석유는 지구상 다양한 지점에서 채굴이 가능하지만 특히나 값싸게 채굴 할 수 있는 석유의 대부분은 중동에 몰려 있는 까닭에 중동의 정세가 석유의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 물론 이 영향이 전세계 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엄청나다.


따라서 강대국들은 언제나 중동의 정세를 안정화시키거나 자신들의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석유가격을 움직이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으나 1980년부터 무려 8년간이나 지속된 이란과 이라크의 전쟁은 중동의 정세를 악화시켜만 갔다.


과거 페르시아 대제국의 후예를 자처하는 이란과 80년 당시 중동의 맹주라 불리우던 이라크의 전쟁은 100만에 달하던 군사력 세계 4위 국가였던 이라크를 부채 300억달러의 빚쟁이 국가로 만들어 버린다.


전쟁은 이라크가 벌이고 돈은 쿠웨이트가 빌려준다. 이것부터가 문제의 시작이었다.


이라크가 돈을 빌린 국가 중 가장 많이 빌린 국가 즉, 최대 채권국은 쿠웨이트였다. 이라크의 총 부채 300억달러 중 무려 140억불에 달하는 돈을 쿠웨이트가 선뜻 내어주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14조... 게다가 1980년대에서 14조원에 달하는 엄청난 액수였다.


그런데 이라크는 어마어마한 부채에도 자금이 모자르자 도대체 무슨생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동네 양아치도 안하는 이상한 궤변과 함께 말도안되는 제안을 쿠웨이트에게 전달한다.


이라크 曰

'140억달러의 부채를 모두 탕감시켜주고 100억달러를 또 빌려달라!'


쿠웨이트 曰

'전액 탕감은 안된다! 그 대신 5억달러는 빌려줄 수 있다.'


쿠웨이트의 이러한 호의적인 제안에도 불구하고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Saddam Hussein, 1937~2006)은 '감히 너네가 내 제안을 거절해?' 라며 오히려 더 역정을 내었고 쿠웨이트의 은혜를 박살을 내버렸다. 그리고는 1990년 8월 2일 쿠웨이트를 침공하면서 걸프전의 불씨를 지핀다.


중동의 뼈대있는 큰 손들 요르단과 사우디아라비아


그러면 먼저 우리는 아랍세계의 질서에 대해 잘 알지 못하므로 중동의 아랍세계의 분위기를 한번 먼저 살펴보고 가자. 먼저 중동의 가장 큰 형님은 요르단이다. 요르단은 작은 나라이지만 요르단 왕가가 아랍권에서 적통혈통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아랍세계에서는 대우를 잘 해주고 있었다.


그 다음이 사우디아라비아로 공식적으로 이 두 나라만이 왕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이라크가 자꾸 아랍세계에서 깽판을 치고 말썽을 부리니 큰 형님인 요르단의 당시 국왕이었던 후세인1세(Hussein, 1935~1999)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과 다른 인물이다]이 사담 후세인에게 중재를 하지만 사담 후세인은 막무가내였다.


당시 세계의 여론이 어떠했는가 하면 이러한 일화가 있다. 이라크는 소련과 무기등을 거래하면서 군사와 외교관계에 있어 매우 가까운 사이였는데 이 소련마저 이라크의 말도 안되는 행태에 비난을 날릴 정도였다.  


아랍세계에서 일이 해결되지 않으니 이번에는 세계의 경찰을 자처하는 미국이 나섰다. 미국이 또 적극적으로 나설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는데 쿠웨이트와 이라크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엄청난 가치의 유전인 바스라 유전에 천문학적인 액수로 투자가 되어있던 미국의 정유회사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었기 때문이다.


이라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기나긴 중동의 전쟁이 세계의 경제에도 영향을 크게 미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을 앞세운 UN안보리 다국적군이 본격적으로 군사적 행동에 돌입하면서 걸프전은 시작된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야하는 것이 있는데 통상적으로 여러나라가 한가지 목적에 의해 뭉치면 연합군이라는 표현을 하는데 왜 걸프전에서는 다국적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일까? 다국적군과 연합군의 차이를 살펴보자.


연합군(Allied forces) : 군사적 동맹을 맺은 국가들이 연합한 군대

다국적군(Coalition forces) : 국제기구에서 합의된 명분을 위해 여러나라가 연합한 군대 


즉, 연합군은 친구들 끼리 뭉친 조직이라면 다국적군은 친구는 아닌데 잠깐 누구를 혼내주려고 뭉친 조직이라는 차이를 갖고 있다. 걸프전에서는 이라크의 무장해제와 쿠웨이트 수호라는 목적에 의해 여러나라가 모였기 때문에 다국적군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쿠웨이트의 전략적 가치를 높게 평가한 미국


쿠웨이트는 이란,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를 접경하고 있고, 페르시아 만의 입구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위치 였기 때문에 미국은 쿠웨이트가 이라크의 손아귀에 넘어가면 중동의 정세는 불보듯 뻔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었다.


게다가 자국의 자금이 어마어마하게 투자되어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자국 국익 보호를 위해 쿠웨이트를 보호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고, 그들이 힘을 쓴 결과는 너무나 허무하게 40여일 만에 다국적군의 완벽한 대승으로 끝이난다.


이는 미국도 예측하지 못했던 결과로 이라크의 100만이 넘는 대군에 의한 끊임없는 소모전이 되리라 보고 있었다. 그러나 2차대전과 같은 인적자원의 소모를 극히 꺼려했기 때문에 미국은 전쟁을 효율적으로 끝내기 위해 철저한 전략을 세웠다.


적의 심장을 파괴하는 미국의 전략


그에 따라 고안된 전략이 이라크 군을 구성하는 성격을 5가지로 나누고 철저히 적의 지휘부를 파괴하여 지휘통신망을 무력화 시킨 후 나머지 조직들도 스스로 와해되도록 유도하는 전략을 세웠다.


5개 전략 동심원 모델(Five Strategic Rings model) 요소

1. 지휘부(지휘/통신망)

2. 유기적 필수요소(동력생산/정유시설)

3. 하부구조(철도, 항공망, 항구)

4. 인구집단(인구집단, 식량원천)

5. 야전군사력


그리하여 40여일의 전쟁기간 동안 단 4일만이 지상전을 치루었고 나머지 기간은 항공전 위주의 전략시설 파괴가 주요 전쟁전개양상이었다. 결국은 머리를 깨고 눈을 멀게하고 팔다리를 완전히 못쓰게한 후 손가락으로 슥 밀어서 마무리를 하는 방식을 취했던 것이다.


미국의 전쟁은 철저히 시스템화 되어 있었다. 심지어 사막의 끔찍한 날씨도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시뮬레이션으로 전투에 유리한 면을 끊임없이 찾았고, 수세에 몰린 이라크가 유전지대에 불을질러버려서 생긴 엄청난 검은 연기 마저도 풍향등을 계산하여 최적의 군사작전 시기를 결정하는 등 무기 뿐만 아니라 전략적인 부분에서도 지금까지는 없었던 최첨단을 달리는 전쟁이었다.


이번 시간까지는 걸프전의 배경과 다국적군이 취했던 큰 전략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다음 시간에는 다국적군이 어떠한 전술로 전투에서 확실하게 승리를 가져왔는지 상세히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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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방TV 유투브 [토크멘터리 전쟁사] 4부. 걸프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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