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야기/토크멘터리 전쟁史

6. 글로 보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 2부. 1차 세계대전(2) 3/3

남보르 2018. 10. 14.


"전쟁을 알지 못하면 역사를 알 수 없다.

이야기로 만나는 토크멘터리 전쟁史"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장기전으로 치달았던 1차 세계대전... 그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았던 전쟁은 이 사건을 기점으로 양상이 많이 달라지게 된다. 바로 전장이었던 유럽의 대서양 건너편에 위치한 떠오르던 강대국 '미국의 참전'이다. 당시 미국은 철저한 중립을 표명하였고 이에 따라 전쟁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의 참전은 전쟁의 상당히 큰 변수였다.


당시 미국이 중립을 내세운 이유를 알려면 그들의 고립주의(Isolationism)의 배경에 대하여 이해가 필요하다. 왜 미국이라는 나라가 고립주의를 이어나가야 했을까. 미국은 신대륙에 유럽인들이 이주하여 건국한 나라이다. 즉, 프랑스, 영국, 독일, 네덜란드 등 여러나라의 이주민들이 섞여서 점차 자리를 잡아가던 나라인 것이다. 


미국은 고립주의에 의해 중립표명, 반전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각기 다른 나라에서 모인 이민자로 이루어진 나라였기 때문에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에 개입하게 되면 연합국 출신 이민자, 동맹국 출신 이민자들이 서로 이권다툼이 생길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따라서 '미국인'이라는 국민 인식의 확산이 필요했기 때문에 이들은 고립주의를 통해 유럽에서 생기는 일들에 관여하지 않아야 했던 것이다.


게다가 아메리카 대륙의 거대한 크기로 인하여 20세기가 될때까지 미국은 자기영토 개발에 역량을 퍼붓는데 여념이 없었다. 뭐 어디 쓸만한 곳 있을까 한번 건드려 보면 광산에 석유에 자원이 넘쳐나던 기회의 땅 이었기 때문에 바쁘게 영토를 개척해나아가기도 부족했던 시기였다. 


따라서 당시 고립주의가 전반적으로 자리잡고 있던 미국에서 유럽으로의 참전은 껄끄러운 일이었고 반전여론이 높아있던 상태였다. 이 시기의 미국의 분위기를 가장 잘 알려줄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우드로 윌슨(Thomas Woodrow Wilson, 1856~1924) 28대 대통령이었다. 윌슨 대통령은 1차대전이 유럽에서 한창이던 1912년 대선에서 참전 반대 공약을 내세워 선거에서 승리하였던 것을 보면 당시 미국의 분위기를 잘 알 수 있다.


사실 윌슨은 여론과는 반대로 미국이 앞으로 전쟁에 참여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선거의 승리를 위해 반대여론을 이용하였다. 일단은 여론을 이용하여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지만 미국의 미래를 위해 참전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있던 윌슨은 참전의 명분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몇가지 사건이 터지면서 드디어 미국은 참전의 명분을 찾을 수 있게 된다.


미국의 참전명분이 된 루시타니아 호와 치머만 전보 사건


미국의 1차 세계대전 참전명분

1. 루시타니아 호 사건 : 1915년 5월 7일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작전에 의해 침몰한 루시타이아 호에 탑승했던 미국인 탑승객 128명이 사망한 사건

2. 치머만 전보 사건 : 1917년 1월 독일외상 치머만이 멕시코에 미국을 침략하도록 제안하는 전보 내용을 미국이 입수한 사건


치머만 전보 사건을 통해 미국이 결코 전쟁에서 안전한 국가가 아님을 미국인들이 인식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미국이 전쟁에 기여를 함으로써 앞으로의 미국이라는 국가가 국제정세에 미치는 영향을 극대화 시켜 세계 초강대국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각인을 시킨다. 미국이 앞장세운 기지는 세계평화를 힘으로써 유지할 수 있는 주도국가가 되어 전쟁을 끝내는 전쟁을 하자는 것이 명분이었다.


미국은 그렇게 1917년 4월 2일 참전을 선언한다.


미국은 참전선언문에서 세계평화를 강조한다. 특히 독일 국민과 싸우려는 것이 아닌 독일 군대와의 싸움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내세웠고, 전 세계 민주정치를 위한 전쟁임을 다시한번 강조했다. 그를 뒷바침 할 계획으로 종전이후 국제연합을 창설할 계획을 발표한다. 미국은 그렇게 유럽을 향해 배를 띄웠고 미국이라는 강대국의 존재감을 내뿜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미국은 경제 강국으로써의 참전 그 이상으로 실질적인 물자 강국으로써의 참전의 의미가 강했다. 미국은 포드의 컨베이어 벨트식 생산 혁신으로 인해 공장 생산성이 그야말로 넘사벽이었던 국가였다. 미국은 떨어지지 않는 물자로 물량전을 감행할 수 있었다. 그들의 물량이 어느 정도 였는가 하면 독일군이 포탄 1발을 발사할 때, 미국이 지원한 연합군은 15발의 포탄을 발사하는 수준에 이른다.


압도적인 물량 앞에 1918년 독일의 기세는 점점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오랜 전쟁에 지쳐가던 국민들과 군인들의 반기로 독일혁명에 의해 독일제국이 해체되고 새롭게 공화국 체제의 국가가 들어서게 된다. 새롭게 들어선 독일 정부에서는 독일 영토일부와 함께 모든 식민지를 포기하였고 보유할 수 있는 군사력에 제한을 받게되고 엄청난 액수의 전쟁 배상금까지 물게 되는 베르사유조약(Treaty of Versailles)을 채결하며 1차대전은 그렇게 막을 내린다.


1차 세계대전이 가져온 변화들


전 유럽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전쟁이지만 이 전쟁을 통해 발명된 물건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들이 우리 주위를 보면 많이 있다. 버버리로 유명한 트렌치 코트(trench coat)는 참호를 뜻하는 trench 안에서 입던 코트를 칭하던 장교용 군복에서 나온 옷으로 트렌치 코트에 달려있는 견장 등 군용 의복으로써의 특징이 많이 남아있으나 지금은 봄, 가을에 빠지지 않는 패션필수품이 되었다.


생리대도 당시 지혈용으로 사용하던 펄프로 제작된 압박대를 여성 간호사들이 여성용품으로 처음 사용하여 지금에 이른 제품이 바로 생리대이다. 이제는 전세계 인구 80억 중 여성인구 40억이 사용하는 생리대가 전쟁 중에 발명되었다니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1차대전 이전에는 유럽의 귀족들이 먹던 디저트가 바로 액체 초콜릿이었는데 상당히 고가의 사치품이었기 때문에 일반인이나 보급품으로는 활용이 어려운 식품이었다. 그러나 물자가 넘쳐나던 미국이 일반병사들에게 고체형태의 초콜릿을 대량으로 보급하면서 유럽 사람들에게 고체 초콜릿의 존재를 알렸고 이 후에도 가장 사랑받는 디저트로 남아있다.


전쟁은 죽음과 함께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1차 대전은 대량살상무기들과 포탄에 의한 부상들로 부상병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안면 손상을 가져왔다. 1차대전 전에는 평생 나을 수 없는 상처가 될 수 있었지만 점차 성형수술(Plastic surgery)의 발전으로 부상 이후의 삶의 질을 향상 시킬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아시다시피 유럽에서 시작된 이 수술이 지금은 우리나라가 가장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


1차대전은 본격적으로 화학무기가 사용된 전쟁이다 보니 화학무기에 대한 대처법이 미흡했으나,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이고자 방독면이 개발된다. 초창기의 방독면은 거의 스노쿨링 수준으로 다른 곳에 있는 공기를 호스로 흡입하는 방식의 굉장히 1차원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이 지속되면서 독일군이 처음으로 활성탄(Activated carbon, 숯도 활성탄의 종류) 필터를 사용한 방독면을 사용하면서 지금의 방독면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물건들의 발명과 발견도 있었지만 1차대전이 바꾼 사회상 중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여권신장이었다. 1차대전 전까지만 해도 유럽에서는 전쟁은 군인들끼리 영주들끼리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국가적 총력전을 1차대전에서 처음 하게 된다. 그러면서 점차 남자는 전장으로 투입되고 여자는 공장으로 투입되는 모습들로 어쩔 수 없이 변해가는데 이는 여자들의 사회적 활동의 참여기회가 늘어난다는 것을 의미했고, 이는 곧 여성들이 사회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여성이 사회적 활동을 하며 경제력을 갖추게 되자 여성들도 점차 사회적인 힘을 갖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 가운데 러시아, 독일, 폴란드, 캐나다 등에서 여성들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참정권을 얻게된다. 영국 또한 1918년에 만 30세 이상 여성에게 참정권을 주는 등의 변화가 일어났고 그 후에 1919년에 네덜란드 1920년에는 마침내 미국에까지 여성 참정권이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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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방TV 유투브 [토크멘터리 전쟁사] 2부. 제1차 세계대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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