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야기/토크멘터리 전쟁史

3. 글로 보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 1부. 1차 세계대전(1) 3/3

남보르 2018. 10. 5.



"전쟁을 알지 못하면 역사를 알 수 없다.

이야기로 만나는 토크멘터리 전쟁史"


피가와 땀이 흩날리는 전장. 그 한가운데 병사들을 지켜주는 것은 무기한자루와 유능한 지휘관 뿐이다. 전쟁의 모든것은 사실 이 무기와 그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이 전부라고 할 수 있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어떠한 무기로 사람들이 목숨을 잃어갔는지 또 그 생명들을 지키기 위해 어떠한 인물들이 악전고투 했을지 이세환 기자의 무기고와 인물탐구를 통해 전쟁과 역사를 이해해보자. 



이세환의 무기고! 이제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다.)



1차 세계대전은 참호, 철조망, 기관총 이 셋을 악마의 3형제라 부른다. 이 것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처절하게 목숨을 잃어갔으면 이러한 별명이 붙여졌을까. 먼저 아이러니 하게 이 세개가 등장한것은 무도 기관총의 등장 때문이었다. 순식간에 대량의 인마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 기관총의 등장은 더이상 병사들의 대형이나 훈련도 사기 등은 모두 깡끌히 무시하고 핏덩이를 만들어버릴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이를 피하기 위해 땅 밑으로 참호를 파게 되었고, 참호를 깊게 팔수록 총에 맞을 확률은 작아지므로 더 깊고 크게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참호를 점령하기 위해서 수많은 병사들이 희생하게 되었는데 방어하는 입장에서는 이들을 자신들의 참호로 접근하게 놔둘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철조망. 이 간단하면서 저렴한 구조물하나에 병사들은 어물쩡거리다가 기관총에 맞기 일쑤였다. 


기관총은 1861년 미국남북전쟁에서 발명되었는데, 이것도 아이러니하게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발명되었다. 바로 의사였던 개틀링(1818~1903, 의사-발명가). 게틀링이 고향 루이지애나로 돌아가는 도중에 벌판에 수많은 병사들의 시체가 널려있는 것에 충격을 받고 총을 사용하는 병사가 적어지면 전사자도 줄지 않을까? 해서 한사람이 여러발을 쏠 수 있는 총을 개발하게 되는데 이 것이 악명높은 틀링기관총이다.


악마의 3형제 참호와 철조망 그리고 그 시작인 게틀링 기관총과 맥심 기관총


개틀링 기관총은 6개의 총열에 1분에 200발을 발사할 수 있었으며, 이는 일반 병사의 70배의 효율이 있는 것으로 보았다. 여기서 발전이 멈추면 또 인류의 역사가 이토록 흥미진진하진 않았을 터, 기관총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하이럼 맥심(1840~1916)에 의해 개발된 맥심 기관총으로 완전히 꽃을 피우게 되는데 개틀링 기관총이 총열이 회전하면서 발사되는 방식에 비해 맥심 기관총은 총이 발사되면서 생기는 반동을 이용하여 재장전하는 방식의 기관총이다.


현대에도 사용하는 다양한 기관총 방식의 시작이 바로 맥심 기관총이다. 맥심기관총은 자동 재장전, 탄띠를 이용한 총알 공급으로 인해 효율적으로 탄을 발사할 수 있었으며 1분에 450발을 발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 기관총은 당시 1차 세계대전에서 사용되었던 일반 보병의 소총인 볼트액션 소총에 비교해 보자. 


볼트액션 소총의 발사 방식을 한번 알아보자. 


볼트액션 소총의 발사방법


볼트액션 소총의 발사방법과 대략적인 시간

1. 장전레버 젖히기 (1초)

2. 5발 탄창 클립 넣고 장전 (2초)

3. 사격 (1초)


아무 조준작업없이 기계적으로 사격을 반복한다고 해도 1발 사격에 4초이상이 걸린다. 이 말은 1분에 15발 이상 발사하기는 매우 어려웠고,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에서 자세를 낮추고 조준해서 사격한다고 하면 1분에 몇발이나 발사 할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일반보병의 무기를 가지고 참호에 자리잡고 있는 기관총을 상대하려면 너무나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 그러나 방패가 있으면 창이 있는 법 악마의 3형제를 무너트릴 신무기가 등장 하게된다. 바로 탱크(Tank)였다. 이 탱크는 다음 무기고 시간에 다시 정리해 보기로 한다.


과거의 전쟁의 승리자는 정복자. 위대한 왕. 천재 전략가, 희대의 명장 등으로 불리우며 칭송했다. 그러나 1차 세계대전 이후의 전쟁과 관련된 인물들은 대게 전범(戰犯, 전쟁범죄자)으로 불리운다. 인류의 인권에 대한 가치관이 변화하고 또 너무나 손쉽게 인간의 목숨을 잃어가는 전쟁이 시작되다 보니 1차 세계대전 부터는 대게 전범이라는 타이틀이 씌워지게 된다.


그 중에서도 대표적인 인물이 독일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였다. 독일 제국을 통일하여 영웅의 칭호를 받는 빌헬름 1세와 전범의 타이틀을 지니게 된 빌헬름 2세, 이 둘은 어떠한 길을 걸어왔을까.


독일은 여러 작은 공국으로 나누어진 국가였는데 당시 프러시아의 황제 빌헬름 1세와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등장으로 나라가 융성해지고 통일의 기반을 단단히 다질 수 있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의 전범 빌헬름 2세와 독일 통일의 주역 빌헬름 1세 그리고 철혈재상 비스마르크


비스마르크와 빌헬름 1세와는 몇가지 일화가 있다. 약간 우리나라의 황희정승과 세종과의 관계와 비슷하달까. 비스마르크는 국가운영에 있어서 자신의 철학이 반영되지 못하면 "나 재상 안할꺼야!!" 하며 빌헬름 1세 앞에서 울어버리곤 했다고 한다. 그러면 또 빌헬름 1세는 "너가 재상안하면 나도 황제 안해!" 라며 서로 칭얼대다가 다시 손을 맞잡고 사이좋게 나라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한다. 너무 귀염캐미가 폭발하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빌헬름 2세 이후 즉위한 빌헬름 1세는 2세와는 반대의 성격을 지닌 인물이었다. 다시 또 비스마르크의 투정이 시작되었을때 따뜻하게 커플캐미를 보여준 1세와는 다르게 "나 재상 안할꺼야!!"라면 "뭐 그리하시게.."라는 반응을 보이는 등 비단 이 사건 외에도 기록으로는 안하무인적인 기록들이 많은 듯 하다. 


그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자.


빌헬름 2세(1859~1941)는 29세의 나이에 프러시아(프로이센, Preussen)의 왕이자 독일제국 황제에 즉위한다. 그는 왼팔이 짧은 신체적 결함을 가지고 있었고 항상 이 때문에 열등감에 시달린다. 또한 독일 제국을 이루어낸 철혈재상 비스마르크를 사임시키고 어긋난 외교정책으로 사방에 적을 늘려가고 있었다. 떨어지는 정치적 감각에 스캔들까지 끊이질 않고 결국 1차 세계대전의 전범이 되고 만 이 남자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자.


세습왕조의 문제점 이랄까 왕이라는 권력을 가지는 인물들의 특징들은 왕조를 세운 자수성가형 왕들은 권력구조를 잘알고 자신의 권력이 어디서부터 나오는지 잘 파악해서 왕까지 오르게 된다. 그러나 빌헬름 2세와 같이 태어나자마자 왕족이었던 인물들은 자신의 권력이 어디서 부터 나오는지 근원을 알지 못했다.


자기중심적이고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한다. 이 당시는 현대사회 같이 사회구성원(귀족, 군부, 자본가, 사회주의자, 노동자 등)과 시스템이 복잡해 지는 시기였고, 황제 한명이서 이 복잡하게 얽힌 구조를 이해해 갈 수 없는 사회구조로 바뀌었기 때문에 더 이 들을 포용하고 원할하게 운영할 수 있는 능력위주의 인물 배치가 중요해지는 시기였으나 빌헬름 2세는 이러한 정치적 감각이 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근대적인 황제의 권력에 심취하여 권력을 남용하게 된다. 영국왕실에서의 빌헬름 2세의 평가를 보면 "머리는 비상했지만 심술궂고 참을성이 없으며 과대망상에 빠지는 아이였다"고 비평했다. 특히나 이 자기중심적인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1차 세계대전 선전포고를 앞두고 발트해로 유람을 떠나버리는 기행을 저지르고 만다. 


당시 유럽 왕실 가계도...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


또 재미있는것이 당시 유럽의 왕실가계도를 보게 되면 왕족들이 서로 정략결혼들을 많이 했기 때문에 알고보면 대부분이 사촌지간이었다. 빌헬름 2세도 마찬가지로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의 외손자인과 동시에 대영제국 국왕 조지 5세와 이종사촌관계였고,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와 외종매부의 관계였다. 그래서 이들이 오히려 더욱 치열하게 싸웠던 것이 아닐까. 일단 가족끼리 분란이 생기면 더 치열하고 잔인해지는 것이 인간인 것인지라..


그렇게 의미없는 소모전만 반복되는 지옥같은 전쟁에 국민들과 군인들은 지쳐갔고 1918년 11월 전쟁 4년만에 드디어 독일혁명이 일어나면서 빌헬름 2세의 퇴위를 요구하게 된다. 이는 수용되고 빌헬름 2세가 퇴위하는 것을 조건으로 연합군에 항복을 하게 된다. 


패전국가가 된 독일은 전범으로 빌헬름 2세를 지목하고 카이저의 위치에서 내려오게 한다. 현대의 전범들은 오히려 더 가혹하게 사형을 하는 등 강력한 처벌이 있었지만 앞서 말했던 연합군들과 사촌관계라는 것이 영향을 미쳤는지 안미쳤는지는 모르지만 단지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으로 마무리가 된다.


그리고는 형제와 부모를 잃어간 수많은 국민들의 원성에 못이겨 네덜란드로 망명하게 된다. 황제의 자리에서는 내려왔지만 프로이센의 왕 지위는 복귀해야겠다는 아집과 망상을 죽을때까지 끝까지 버리지 않고 그의 유해조차 독일로 송환되지 않는 영원한 망명자로 남게 되며 그렇게 지옥같았던 1차 세계대전은 막을 내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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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방TV 유투브 [토크멘터리 전쟁사] 1부. 제1차 세계대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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