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이야기/토크멘터리 전쟁史

2. 글로 보는 토크멘터리 전쟁사 - 1부. 1차 세계대전(1) 2/3

남보르 2018. 10. 5.



"전쟁을 알지 못하면 역사를 알 수 없다.

이야기로 만나는 토크멘터리 전쟁史"


사라예보 사건 이후 전 유럽이 전쟁의 분위기로 달아오르고 있었다.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홀로 날카롭게 칼을 갈고 있던 국가가 있었으니 바로 독일이었다. 그들은 통일 후 치밀하게 전쟁준비를 해오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는 당시 독일군 참모총장이었던 슐리펜의 슐리펜 계획을 통해 현실화 되어가고 있었다.


독일은 지리적인 이유로 동부와 서부 전선으로 나누어 양면 전쟁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서부로는 프랑스와 영국 그리고 동부로는 러시아라는 강대국들과의 대결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철저히 전쟁준비에 온 힘을 토해내야만 했다. 이러한 이유로 슐리펜 계획이 세워지고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독일군 참모총장 슐리펜과 그의 슐리펜 계획


슐리펜 계획 - 서부전선에 올인하는 계획
동부전선 : 러시아를 최소한의 병력을 이용하여 효율적으로 방어.

서부전선 : 좌군(13%)과 우군(87%)으로 나누어 벨기에를 우회하여 대대적으로 프랑스를 침공.

극단적인 선택성을 지닌 전술이었던 슐리펜 계획은 전쟁초기에 동부전선이 약화되고 독일 영토를 내어주고 시작해야 했다. 내 살을 내어주고 적의 뼈를 자르는 전술이었는데 안타깝게도 슐리펜이 참모총장직을 내려놓으면서 백지화가 되어 버린다. 그 후임으로 취임한 참모총장 몰트게는 조금 더 보수적인 관점에서 계획을 세우게 되고 전장을 서부와 동부에 각각 7:3의 비율로 배치하여 방어와 공격 어느하나 모자람 없이 전쟁을 수행하도록 수정하였다.


이는 단순히 병력의 분산 뿐만 아니라 슐리펜 계획의 기습, 속전속결이라는 가장 큰 장점을 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그러나 독일도 아무생각없이 슐리펜 계획을 취소한 것이 아니라 그 이유가 있었다. 1차 세계대전 당시는 무기 수준이나 병력의 무장화는 중세와 근대와 비교할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발전했지만 물자 보급의 문제는 크게 달라질만한 요소가 없었다. 여전히 말을 주력으로 식량과 탄약 등의 보급품을 옮겨야 했다.


그러나 독일은 대량으로 물자를 옮길 방안으로 철도를 이용한 보급을 생각했으나 이는 쉬운 선택은 결코 아니었다. 주요한 요충지까지 철도를 깔아야 했고 철도를 연결한 이후에는 군대의 행진속도에 맞추어 굉장히 정밀하게 물자를 날라야했다. 컴퓨터도 없던 당시에 이는 엄청난 수준의 행정력이 필요했으나 독일은 이 어려운 일을 해내게 된다. 이로 인해 보급에 자신있었던 독일은 극단적 공격전술로 자국영토내에서의 출혈을 감당하지 않을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슐리펜 계획을 철회하게 된 것이다.


독일이 이 철도를 통한 보급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는 일화에서 엿볼 수 있다. 당시 독일육군사관학교에서 가장 성적이 좋은 인물들은 장교가 아닌 철도청으로 발령하여 이 보급계획을 다듬는 일을 하였고, 이 때부터 이들은 수학능력이 매우 우수한 인재들을 중용하여 군대의 시스템화에 정착에 공을 들였고 나아가서는 우수한 수학능력을 바탕으로 군사 암호체계의 확립과 적국의 암호 해독 기술을 발전시키게 된다.


타넨베르크(Tannenberg), 현재의 폴란드 스텡바르크(Stębark)의 위치


아무튼 1차 세계대전은 드디어 발발하게 되고 동부전선부터 러시아와의 전쟁이 시작된다. 이름하야 타넨베르크(Tannenberg[현재 폴란드Stębark]) 전투.


타넨베르크 전투

러시아 제1군 40만 

러시아 제2군 40만 

총합 80만

    VS

독일군 16만


위 숫자에서 보이듯이 러시아군은 2차 대전때나 이때나 말도 안되는 숫자로 밀어붙이기 작전을 감행했는데 이 당시 러시아군 별명이 스팀롤러였다. 스팀롤러란 도로포장할때 사용하는 평탄화 장비인데 그 만큼 러시아군이 압도적인 숫자로 적을 밀어버리는 전술을 사용해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단점은 군대의 수준이 높지 않다는 것이었다. 대부분의 인원들이 문맹자였는데 칼과 창을 사용하던 이전 세대 전쟁에서는 교육수준보다는 육체수준이 중요했지만 방아쇠 한번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게 된 1차 대전쯤에서는 총을 다루는데 필요한 교범이라던지 포의 각도 조절, 전술 이해 등 병사들의 교육수준이 중요한 요소가 되어가는 시대여서 이것이 러시아 군의 단점이었다.


게다가 독일이 전쟁 개전 후 6주정도 걸릴 것이라고 예상했던 러시아군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3주만에 전선에 도착한다. 그러다 보니 군대의 준비수준도 낮았고 또하나의 문제는 두개의 군으로 나누어 출발했던 군의 이동속도가 달랐는데 제1군이 먼저 독일 북쪽으로 들이 닥치고 2군이 나중에 독일 중부로 들어오는 모양새였으나 독일은 러시아제 1군을 먼저 상대하면서 져주는척 안심하게 만들고 중부로 가서 제2군을 전멸 시킨 후 다시 북진하여 제1군까지 전멸시키는 기염을 토하게 된다.


이러한 속도전이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위에서 언급하였던 철도를 통한 철저한 보급선 계산이 그 이유였다.


러시아 제1군 레넨캄프와 제2군 삼소노프 장군. 둘다 관상이 독불장군이다.


그런데 또 이때 러시아군이 허망하게 패배한 요인은 제1, 2군의 장군들의 무능도 한몫을 했는데 삼소노프 장군이 이끄는 제2군이 전멸위기로 도움을 요청하였으나 제1군 레넨캄프 장군은 이를 거부한다. 이는 라이벌 의식때문에 거부했다는 설과 상황이 안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이에 얽힌 에피소드가 하나있다.


당시 독일군 통솔은 호프만 장군이 맡고 있었는데 이 호프만 장군이 대위시절 극동의 일본과 러시아의 전쟁에 참관장교로 있던 때에 일어난다. 당시에도 러시아 지휘관이었던 레넨캄프와 삼소노프는 이때에도 서로의 불협화음에 일본에게 박살이 나고 포로가 된다. 포로수용소에서 만난 이들은 병사들 앞에서 주먹다짐을 하게 되는데 이를 참관장교로써 있던 호프만이 이 꼴사나운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자국의 전쟁에서 이 두 러시아 장군을 적으로 마주하게된 호프만은 이 전쟁은 '우리가 이겼다'는 말을 남기고 전쟁을 하게되니 참으로 역사가 아이러니하다.


1차 세계대전 최악의 전투지 솜(Somme), 이프르(Ieper 네덜란드어, Ypres 프랑스어), 파스샹달(Passchendaele)


그렇게 조금은 싱겁게 동부전선의 전투는 독일이 승리를 거두지만 서부전선은 녹록치 않았다. 1차 세계대전은 정말 악명높은 전투가 많았기로 유명한데 그 중 정말 처절한 최악의 전투로 3대 전투를 꼽는데 솜 전투, 이프르 전투, 파스샹달 전투가 있다. 모든 전쟁이 최악이 아닌 전쟁이 없지만 특히나 1차 세계대전의 전투들이 최악으로 꼽히는 이유는 참호전에 있다.


중세 근대는 그렇다 치고 나폴레옹 시절의 전투를 떠올려보자. 병사들이 일렬로 서서 총을 들고 서로의 눈알이 보이는 거리까지 붙어서 총을 쏴댄다. 총이 있지만 아직까지도 대형이 있고 진법이 존재하는 중세 전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유는 기관총이 아직 발명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기관총은 1개 중대인원(약 100명)을 5분안에 전멸시킬 수 있는 위력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대량 살상무기가 1차 세계대전에서부터 이용되기 시작했는데 이 무기 한개가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과학에 점점 자신감이 붙어 가고 있는 유럽은 당시기준으로 현대전은 최선의 방어는 공격! 그리고 공장에서 쏟아져 나오는 물품들로 물량전이 될 줄 알았다. 그래서 엄청난 인원과 무기로 공격을 하는 전술을 사용했는데 기관총 때문에 이 예상이 완전히 빗나가게 된다. 아무리 대량으로 수많은 인원이 들이닥쳐도 기관총의 위력앞에 사람목숨이 너무나 허망하게 찢겨나가는 상황이 벌어지다 보니 물량을 때려부어도 전선이 조금도 나아가지 못하는 상태가 벌어지고 기관총을 피하기 위해 땅을 파고 방어를 하는 참호라는 개념이 생겨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참호

 

참호는 전쟁을 지옥으로 만드는데 이 지옥이란 땅을 파고 비가오면 진창이 되는데 여기서 나가면 기관총 세례를 맞으니 나갈 수도 없으니 아예 생활 자체를 진창인 참호에서 하게 된다. 병사들의 똥오줌이 그대로 떠다니는 썩은 물에 담겨진 그들의 발은 신발과 같이 썩어갔다. 참호족이라는 새로운 병과 싸우는 등 극악의 환경에서 잠을 자고 밥을 먹고 생활을 해야하는 참호는 이름 그대로 지옥이었다.


이러한 참호를 뚫고 영국군은 피해를 무릎쓰고 무조건 진격 작전을 펼치며 4개월을 전진하지만 그들이 전진한 거리는 고작 8km... 그에 대한 대가는 30만명이 파스샹달 전투에서만 사망하는 지옥이 펼쳐진다. 당시에 참호들을 길이로 환산하면 4만km 지구둘레만큼의 길이가 1차 세계대전에서 각국이 파놓은 참호의 길이였다.


참호는 10열까지 겹겹이 지하도시처럼 만들어졌고 이 사이사이 마다 철조망을 쳐놓았기 때문에 총알이 날아오지 않더라도 빠르게 접근하는 것도 불가능하였다. 진격을 해서 적의 참호를 점령하려면 포격으로 1선 기관총 참호를 무너트리고 그사이 전진하는 과정에서 또 수많은 병사들이 죽어나갔다. 당시 유럽의 땅들이 진흙땅이었기 때문에 진흙탕이 되어버린 참호에서 나와서 총알이 난무하는 땅을 철조망을 끊으며 전진하는 일이 얼마나 공포스럽고 힘든일이었겠냐는 상상에 맡기겠다.


문제는 이렇게 양쪽이 몇십만명씩 갈아넣은 소모전을 치루어도 고작 몇km 전진하는데 그치는 상황들이 계속 이어지는데 평지에서 이러한 결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말그대로 무의미한 소모전의 연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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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국방TV 유투브 [토크멘터리 전쟁사] 1부. 제1차 세계대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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