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 이야기/인생이야기

3. 어릴적 기억과 향기 그리고 감정

남보르 2018. 5. 1.


기억의 향기

아주 촌스러운 껍데기의 어릴적 사진이 가득한 앨범을 펼치면 어색한 어릴적 내모습들과 함께 문득문득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곤 한다. 이렇게 옛날이 어떻게 기억이 나냐고 물어보는 어머니의 못믿겠다는 반문에 그날의 소소한 기억들을 펼쳐놓으면 진짜 기억하네..하곤 머쓱하신다. 나는 냄새를 잘 맡지 못한다. 그런데도 사진을 보거나 기억을 떠올리면 그날의 냄새 혹은 향기에 대한 강한 반응이 온다. 냄새를 잘 맡지 못하는 내가 이렇게 냄새에 대해 반응하는 것을 보면 평소 냄새에 민감한 사람들의 경우에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사고나 행동에 영향을 미칠것 같다.


물론 무의식적인 감정과 실제 감정에도 많은 영향을 끼칠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냄새를 잘 못맡는 것이 감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인지 현재의 나는 내가 생각하기에 정이 없다. 개인주의적이라고 해야할까? 그런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엄마 품에서 나와 이제 막 윗집 아랫집 친구들과 뛰어놀던 시기의 나는 모든 사물과 사람과 자연에게 정이 많았던 아이였던것 같다. 시골에 혼자계시는 할머니가 그렇게 보고 싶었고 힘들게 돈벌어오시던 아빠의 뒷모습이 너무나 듬직해 보여서 마냥 좋았던 것 같다.


기억이 닿는 옛날 중 지난 번 목욕탕 사건 이후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도 역시나 사고사건로 냄새에 관한 사건은 아니지만 유독 뚜렷한 기억 중 하나의 사건이기 때문에 한번 이야기를 하려한다. 세식구가 단칸방에서 살 때였다. 당시에 아빠는 택시 일을 하셨고, 엄마는 미용실을 그만 두신채 부업일로 인형을 꼬매는 일을 하셨다. 유치원을 가기도 한참전이었기 때문에 엄마 품에 쏙들어가는 작은 체구였을 것이다. 엄마는 그날도 인형 꼬매는 일을 하고 계셨다. 나는 마냥 엄마 품이 좋았을 때였기 때문에 큰 바늘로 인형을 꼬매고 있는 엄마의 품속에 그렇게 파고들어갔다.


아니나 다를까 조금 잠이 들었나 했는데 갑자기 눈에 기둥이 박히는 듯한 고통에 번쩍 잠에서 깨어났던것 같다. 나는 엄마의 바느질에 오른쪽 눈을 찔리고 말았다. 그렇게 울고불고 하는 나를 엄마도 어떻게 하질 못하고 근처에 살던 큰아빠를 깨워서 택시를 탄채 나를 병원에 데려갔다. 거기까지가 내 기억의 마지막인데 이 날에 대해 어머니에게 듣고 싶어 여쭈어보면, 어머니에게도 상당히 트라우마셨는지 꺼리는 표정으로 자세히 말씀해 주시지 않는다. 


다행히 눈에는 큰 문제는 없었지만 아직도 오른쪽 눈동자 옆을 보면 점처럼 자그맣게 흔적이 남아있다. 이 때의 후유증인지 누군가에게 안기면 당연히 포근하니 좋지만 시간이 길어지면 문득 섬뜻한 기분이 들때가 있다. 매번 그런것은 아니지만은.. 



<사진1. 바느질 에피소드 시기의 나와 가족들>


그 후로도 그 단칸방에서 꽤나 오래 살았던것 같은데 아직도 그때의 집 구조, 방 밖에 있던 화장실, 위층 장난꾸러기 형제였던 민재, 준재 등 많은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그 때는 참 겁많고 말이 없지만 작은 이야기에도 항상 싱글벙글한 그런 사랑스런 아이였던것 같다. 물론 내 기억 보정일 수도 있으나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나는 그랬다.


그리고 그때는 유난히 냄새에 대한 기억이 많은것을 보면 난 당시 냄새를 곧잘 맡았음에 틀림없다. 쇠냄새, 나무냄새, 쾌쾌한 냄새, 향기, 비냄새, 흙냄새, 엄마냄새, 아빠냄새, 기분좋은 냄새, 슬퍼지는 냄새.. 냄새와 향기 그리고 기억들이 얽혀 내 어릴적 시절을 감싸고 있다. 학창시절이 되고는 냄새에 대한 좋은기억 혹은 안좋은 기억들이 없는 것을 보면 특정시기를 지나 난 냄새를 잘 못 맡게 되었고, 또 성격과 감정선 또한 그렇게 매말라 버린것이 아닌가 싶다.


혹자가 이 글만 보면 이 블로그주인장 완전 냉혈한아니야?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기에 만약 내가 좀더 정있고 다양한 감정을 가진 내면이 진정하게 따뜻한 사람이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후각이 더 예민 했다면 분명 그러한 방향에 좀 더 가까운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에 글을 써보았다.


"후각과 감정을 담당하는 신경들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냄새와 감정을 처리하는 뇌는 어떤 부위보다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고 상호의존적이다...(생략)...이러한 구조를 보면 감정을 다스리는 뇌 부위에 특권적으로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감각은 후각 말고는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수종_자연과학 필독서 <욕망을 부르는 향기> 소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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