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 이야기/인생이야기

2. 내 기억의 끝자락

남보르 2018. 4. 22.


당신의 기억속 가장 먼 옛날로 돌아가보자.

무언가 꿈속 장면 처럼 명확하진 않지만, 그 때의 감정과 일렁이는 주변 인물들의 표정 그리고 유독 눈에 띄는 사물한가지. 눈을 감고 기억을 뒤집고 뒤집어 간신히 도달해 내 가장 먼 기억을 미간을 찡그리며 꺼내보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내 가장 먼 기억은 내가 아장아장 걸을 수 있었는지 아닌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어머니의 보자기에 쌓여 등뒤에서 어머니의 옆머리를 만지는 장면이다. 어머니께서 미용실을 하셨기 때문에 건조한 드라이어에서 나오는 그 냄새도 어렴풋이 마음에 떠오른다. 


주변 친구들과 간혹 어렸을적 기억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생각보다 그들의 기억이 짧음에 의아해 하곤 한다. 초등학생 시절은 물론이고 중학교 시절까지 확실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 잘났다는 것은 아니지만 내 기억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시작된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잘 걸었는지 어쨌는지 모르는 보자기 시절의 기억부터 큼지막한 사건들의 기억들은 꽤나 분명히 난다.


가장 먼 기억은 보자기 시절이지만 가장 강렬한 기억은 여탕에서의 기억이다. 여탕의 기억이라고 해서 뭐야 이놈 굉장히 부러운데? 라고 할 것은 없다. 난 여탕에서 빠져죽을뻔한 기억이기 때문에 당시 나체의 여자들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당시 세살 내지 네살 쯤이었던것 같은데 자신의 때를 지난 생의 업보를 쓸어내야 겠다는 듯이 밀고있는 엄마에게 질려 난 조용히 엄마의 품에서나와 자그마한 비행기 장난감으로 슝슝거리며 탕 난간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장난감을 잡으려 했는지 미끌어졌는지 탕으로 빨려들어가듯 그렇게 탕으로 사라졌다. 그렇다 사라졌다라는 표현이 맞다. 작디 작고 얇은 피부의 꼬맹이의 몸으로는 그 탕은 너무나 뜨거웠고, 또 너무 깊었다. 그 당시의 기억은 너무 선명한데 부르륵 거리며 물은 폐로 들어가는지 위속으로 들어가는지 모른채 내 몸속에 뜨겁게 차들어갔고, 아직도 짧지만 당시엔 있으나마나했던 그 짧은 다리는 바닥에 닿아보겠다고 물속을 허우적대고 있었다. 


분명 물속에서 허우적대고 있었기 때문에 물위로는 첨벙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난 물속으로 사라졌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너무 고통스러웠고, 살고싶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의 처절한 몸부림에 물이 조금 튀었을라나.. 천장쪽 달무리가 진듯 일렁일렁 물속에서 번져 보이는 형광등 불이 갈라지며 손하나가 불쑥 들어와 나를 들어올렸다. 난 그렇게 울지도 못한채 물을 토하며 켁켁 거리고 공포에 떨고 있었다. 너무나 긴 시간이었음이 분명한데 기억이 끊기지는 않았으니 실제로는 2~30초 정도 였을 듯하다. 





모르는 아주머니였다.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생김새마져 기억의 모자이크로 가려진채 존재가 희미한 그 분이 없었더라면 난 이자리에 없었고, 내가 기억하는 이 모든 세상도 없었다. 너무나 감사합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서 바나나 우유라도 챙겨드리지 못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렇게 따뜻한 아주머니의 토닥임에 물을 거의 다 토해내고 있을 때 그때 때를 밀고 있던 때쟁이 아줌마가 허접지겁 달려왔는지는 모르겠는데 아무튼 나를 들어올리며 연신 아주머니에게 감사하다고 조아리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는 인지하지 못하셨던게 분명하다. 나를 품속에 안으시고는 그때서야 울음을 토해내는 나에게 "인생은 실전이야 X만아"라고 외치던 욕쟁이 할머니 마냥 "그렇게 무서웠엉??"하며 귀엽다는 듯이 히죽히죽 웃던 때쟁이 아줌마의 모습이 선하다.  


그리곤 거짓말같이 기억이 끝나있다. 마치 길을 걷다 그랜드케니언의 건널 수 없는 절벽을 만난것처럼 그 때 그 엄마의 한마디 이후의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그때의 기억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이 한결같이 똑같아 보인다. 내 기억 가장 먼 곳에서도 어머니 그 자체의 모습이었고 지금의 어머니 또한 인자하고 웃음이 많으신 내 어머니이다. 실제로는 세월의 흔적이 힘들게 살아온 인생을 증명하듯 여기저기 훈장들처럼 몸에 고스란히 박혀있지만 난 애써 고생의 흔적은 지우고 어머니의 미소만 바라본다.


정말로 오래된 30년은 된 기억이지만, 이러한 충격이 내 마음속 너무도 강렬히 자리잡고 깊은 물에 대한 공포가 아직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면, 유년기 시절의 상처는 정말로 무의식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흉터가 되는것이 분명하다. 나의 경우는 사고에 대한 공포였지만 이것이 만약 사람에 대한 상처, 폭력에 대한 상처라면 정말 항상 지금까지도 내 무의식은 날 폭력에 대한 그리고 사람에 대한 적개심으로 몸과 마음을 모두 지배하고 있었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친절 해야하고 젠틀해야하며, 그 것이 어린이라면 더욱더 조심하고 내 행동하나하나에 신경써서 날 가다듬고 그들을 대해야 한다. 물론 나도 사람인지라 정색하고, 화를 내지만 나이가 먹을 수록 더 조심하려고 항상 노력 중이다. 내 기억의 끝자락의 내가 행복하려면 지금의 나도 그에게 떳떳해야 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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