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장 이야기/인생이야기

1. 개인신상

남보르 2018. 4. 20.

누구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쏟아놓을 통로가 필요하다.

적어도 나의 경우는 그렇다. 하루가 저물어가는 저녁시간부터 잠들기전까지 넋놓고 가족들과 티비를 보며 웃지만 정작 내 가족과의 대화는 없다. 남들의 인생이야기와 함께 나와는 관계없는 남과 남들이 만들어주는 웃음거리에 만족하며 잠이들고, 다시 또 내일이 오지만 정작 그들은 내곁에 없다. 진정 내곁을 지켜주는 이들의 인생에 귀를 기울일 때 내 인생도 그들의 인생에 슬며시 스며들겠지만, 오늘도 그러지 못했고, 또 다짐해도 내일도 그러지 못할것이다. 나는 나를 잘 안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분명했지만 지금까지 쓰지 못했다. 나는 남들이 볼 때 분명 외향적인 사람이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살아오느라 글을 쓰는 것도 공부를 좋아한다는 것도 모르고 살아왔노라고 변명해본다.


고해성사, 대나무 숲, 자백, 수다.. 말하고 싶은 당신과 나 그래서 이곳을 택했다.

사람들은 비밀을 알게 되었건 비밀이 없건, 일이 있건 없건, 잘못을 했건 안했건 항상 입을 열면서 마음의 평온을 찾는다. 천주교인들은 교리에 어긋나는 행동에 대한 죄책감을 고해성사를 통해 풀어내고, 경문왕의 모자를 만든 그 작자는 대나무 숲에서 한을 풀어 지금까지 회자되는 레전드가 되었고, 범인들은 입에서 자신의 형량을 결정짓는 대신 자신의 마음의 안정을 가져다 줄 자백을 하며 후련해한다. 


입이라는 창구를 통해 인간은 존재를 인정받고, 위로받으며, 억울함을 해소하고, 흐느끼고, 다시 웃는다. 많은 언어적인 욕구가 가족들과 친구들 그리고 여자친구를 통하여 해소된다. 그러나 오늘 밤 사소하지만 진정 하고 싶던 이야기 하나는 입밖을 나가지 못한채 가슴속에 묻고 그렇게 내일 아침 기억속에서 사라진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며 진정 하고싶던 이야기 하나를 외쳤던 그 남자의 대나무 숲 같은 존재가 나에게도 있었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블로그! 온전히 내 공간이고 내 이야기만 일방통행으로 누군가의 모니터로 배달되는 최첨단 대나무 숲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사실 블로그라는 것은 상당히 스트레스를 받는 도구였다. 어찌되었건 내가 아는 정보를 공유하며, 그의 대한 대가로 소정의 광고비를 얻기 위해 시작한 블로그였지만 글 하나하나를 채워갈 때마다 머리속에 있는 지식의 효과적인 전달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어렵고 힘들다는 것을 시간이 갈 수록 더 크게 느끼고 있다.


혹자는 꼴랑 글 50개 써놓고 무엇이 힘들더냐라고 질타할 수 있다. 인터넷 세계에서는 글이 수천개에 달하는 거대한 블로그들이 수십 수천개는 되니 말이다. 존경한다. 이것은 글의 질이나 정보의 수준과는 별개의 이야기이다. 그들은 존경받아야하고 그들이 가져가는 막대한 수익은 응당한 대가이다. 


그러나 누군가를 설득시키고 정보를 전달하기 위한 글을 쓰는 것은 정말 힘든일이었지만 내 이야기를 하는 지금만큼은 너무나 행복하다. 그래서 언제쓰던 눈치 안보고 내 이야기가 하고 싶을 때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첫 이야기는 내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이야기이다. 개인의 인생이라고 하면 무엇인가 서사적인 느낌을 주지만 개인의 신상이라고 하면 왠지 보고서 한 페이지에 오고가는 질의응답일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름, 나이, 학력, 직업, 키, 몸무게 등등... 단답형의 질문과 단답형의 대답이 오가는 것이 개인신상이다. 


'너의 인생은 어땠어?' 라고 질문한다면 나와 당신은 어떻게 답해야 하나? 막막하다... 참 무엇부터 이야기를 해주어야 하나? 오늘 점심먹은 메뉴? 어제 갔던 좋은 레스토랑? 내 부모님 이야기? 그것들 모두가 내 인생의 일부분인데 꼭 거창하게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좋은 인생이었다고, 힘든일이 많았지만 지금은 참 행복하다고 말해주어야 할까? 그러나 누구나 사소한 것들 보다는 이러한 거창함이 자신을 대표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늘 인생이라하면 장황함으로 포장하려 한다.


개인신상은 모두 과거의 이야기이다. 이름도 학력도 직업도 지금까지 살아온 발자취를 보여준다. 물론 취업을 위한 이력서라면 미래에 대한 이야기가 하나쯤은 들어간다. '희망연봉' 그러나 이것 외에는 모두 과거와 바꿀 수 없는 것들이 쓰여진다. 그래서 더 솔직하고 간결하다. 다만 이런 개인신상들은 나를 대표할 순 없는 것들이다. 우연찮게 같은 동네에 살아온 친구와 거의 비슷한 이력으로 채워지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같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심지어 대학교까지 그리고 군대를 갔다오고 회사에 들어갈 때면 이 친구와 나는 개인신상으로는 구분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있다.


그러나 분명 그와 나는 전혀다른 사람이고, 내 인생 이야기를 대신해줄 수 없는 사람이다. 이렇듯 우리는 내 인생은 장황함으로 포장하려 하지만 반대로 남의 인생은 고작 몇 줄의 개인신상으로 평가하려 한다. 이러한 사회적 구도가 참 씁슬하지만 또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자신의 인생을 대표해줄 개인신상 한줄을 더 채우려 그렇게 아둥바둥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나도 내 개인신상 하나를 남기려 오늘도 아둥바둥 살아간다. 무엇인가 힘들어보이고 우울해보일 수도 있지만 분명 불행하지 않다. 어렸을 적 인생의 낙은 재미추구였으나, 지금의 나는 나의 발전이 낙이다. 여기서 발전은 지적인 발전이 될 수도 있고, 인격적인 발전이 될 수도 경제적인 발전이 될 수도 있으나 아무튼 내가 점점 좋은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음에 행복을 느낀다. 비록 몸이 피곤하고 시간에 쫒길 순 있지만 말이다.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한번 더 나에대해 생각해보고, 한번더 발전할 수 있는 내가 되는 시간이 되어가길 빌면서 인생이야기를 채워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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